나는 致仕하게 은퇴하고 싶다 – 김형래 지음/청림출판 |
책 제목에 끌려보기도 참 오래간만이다. 한동안 책 읽을 심적 여유가 없었던 탓도 있지만, 그만큼 당장 읽어봐야겠다는 마음 들만한 책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 회사 업무 중이었음에도 받아들자마자 책장을 넘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
치사(致仕)
제목에 치사하다는 말을 쓰다니 책이 좀 경박한가? 아니면 파격을 시도한 건가 싶었는데, 제목 위에 살짝 작게 적혀있는 한자를 보고 놀랐다. 이 단어는 일상 생활에서 친구들을 향해 내밷던 그 ‘치사’가 아니라 나이가 70세가 넘어서 벼슬을 물러나는 것을 두고 쓰던 옛말이란다. 저자의 작품인지, 편집자의 작품인지 모르겠지만 내 인생에 은퇴는 없다던 피터 드러커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 아닌가 싶다. (사오정이라는 시대에 70세까지 은퇴하지 않겠다니 좀 치사해 보이지만 그래도 그때까지 버티겠다는 중의적 표현인데, 그냥 지금 직장을 계속다닌다는게 아니라 인생을 이모작, 삼모작 하면서 살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긴 제목이 아닌가 싶다.)
은퇴
밭을 갈때 땅을 보고 갈면 고랑이 삐쭉삐쭉하지만 멀리있는 나무를 바라보고 갈면 곧게 밭을 갈 수 있다. 당장 닥치는 상황에 대처하기 급급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칠 수 있는 법인데, 두 번 살 수 없는 인생에서 눈 앞의 일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잃고 살 수 는 없다. 이때 가장 좋은 것이 삶의 끝, 내가 살고 있는 인생의 끝을 떠올려 보는거다. 언제나 현역으로 지금처럼 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인데, 애써 사실을 모른척하려 한다. 은퇴를 목전에 둔 세대들 뿐만 아니라 아직 사회 생활을 시작조차 하지 않은 10대, 20대 초반의 세대들도 은퇴를 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듯.
은퇴 1. 조직 속의 나를 버려라
은퇴를 은퇴를 하게 된다면, 뭘 먼저 준비해야할까? 책을 읽으면서 나를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왕년에 ‘날려보지’ 않았던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은퇴를 해서도 그때의 기분대로 살려고 하면 여러가지 마찰이 생긴다. 대표적인게, 괜찮은 회사에서 괜찮은 직함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느끼는 허무함이 아닐까?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여의도 금융권에서는 증권사 브로커? 영업직?이 을이고 펀드매니저나 트레이더가 갑의 위치에 있다. 거래 수수료가 주수입원이다보니 어쩔수없는 구조인데, 흔하지 않은 일이지만 주식 매니저로 있다가 회사 사정상 채권 분석팀쪽으로 회사를 옮긴 동료가 있었단다. 그전까지만 해도 여러 증권사에서 수시로 연락이 오고 이리저리 인사를 받았지만 팀을 옮긴 뒤 연락이 뚝~ 끊겼다고 한다. 당장은 내가 유망한 기업 ‘펀드 매니저’라고 어깨에 힘을 쓸지 모르지만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 되고 만다는 사실.
냉철하게 판단해서, 내가 호가호위 중이라면 은퇴할때는 급격한 환경변화를 각오해야 한다. 아니면, 미리 부터 조직 속의 내가 아닌, 스스로의 나를 준비하든지..
은퇴 2. 관계 재정립이 필요하다
아직까지는 직장에서 퇴직하는 남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탓에 주로 퇴직하는 사람과 부인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우리보다 시대를 약간 앞서가는 일본에서 은퇴한 부부의 황혼이혼이 부쩍 늘어났다는데, 은퇴 이전과 이후 부부간의 관계도 다시 정립해야 한단다.
특히, 마음에 와 닿았던 이야기는 인생 60일때는 자녀들 결혼시키고 나면 삶을 마감할때가 오지만 이제는 그 자식들이 자기들의 삶터로 빠지고 노부부만 남게 되었을때, 다시 제 2의 신혼이 시작된다는 것. 정말 마누라님에게 젊을때부터 잘해야겠다는 생각과 평생을 연인같이, 친구같이 지낼 방법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퇴 3. 은퇴란 없다?
이제 은퇴를 하면 8만 시간이 주어진다고 한다. 워낙 큰 단위 숫자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얼마 안되보이는 것 같지만, 하루 8시간씩이라고 하면 꼬박 27년이 넘는 시간이다. 젊음을 불살랐던 직장을 떠나서도 다시 그 직장 생활만큼의 삶을 더 살아야 하는데, 뭘 해야할까?
독일인 마을에서 여생을 보내고 계신 분들이, 고국에서 편안하게 쉬기만 하시는게 아니라 지역내 국제 행사에서 외국어로 봉사하거나 아이들에게 독일어를 가르치는 것처럼 이제껏 해오던 일의 연장선에서 무언가를 해볼 수 도 있고,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일들에 도전해 볼 수 도 있을테다.
개인적으로는 음악, 그것도 재즈를 한번쯤 해보고 싶다. 미국에 잠시 머물때, 어느 화창한 주말 오후, 은퇴를 해도 십여년 전쯤에는 하셨을 것 같은 어르신들이 지역 도서관 앞 마당에서 사람들을 위해 작은 음악회를 여셨었다. 직장을 다닐때 취미 생활 삼아 시작했던 악기였는데, 그때 멤버들이 마음이 맞아 은퇴이후에는 팀을 이뤄 가까운 근교를 포함해서 지역내에서 재즈팀으로 활동하고 계신다고 했다. 즉흥 연주가 난무하는데 오랜 시간동안 쌓여온 경륜이 그렇게 잘 묻어날 수 가 없었다. 비록 재주는 없지만, 잘 준비해서 그런 시간들을 가질 수 있으면 어쩔까하는 작은 소망이다.
삶의 끝자락에 ..
은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연금이라도 넣어두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금전적 불안감이 먼저 엄습해 오는게 지금의 시대상이 아닌가 싶다. 실상, 돈만 준비한다고 다 되는게 아닌데. 아니, 그때의 노후를 위해 지금의 삶을 희생하면서 살아가는게 행복할까? 그게 좋은걸까? 얼마 전에 읽었던 천즈우의 자본의 전략에서 나왔던 것처럼 젊은 시절 돈을 써야할때는 돈이 없지만 막상 나중에 은퇴를 하고는 여유로운 자금이 생겨본들 그 돈으로 누릴 수 있는 효용이 급격히 감소한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툴들을 활용해 미래의 소득을 현재로 당겨와서 내 평생의 자본을 효율적으로 누리는게 더 낫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 근교 여행을 포기하고 돈을 모아서 나중에 은퇴해서 기력이 쇠할때 세계 일주를 하는게 좋은 선택일까?
이런 사소한 것부터, 지금의 삶에 대한 것들이 정리가 되지 않을때는 은퇴이후, 삶의 끝자락에 서 있는 ‘나’를 그려보는게 어떨까? 그때를 기준으로 다시 현재를 거슬러 오며 세상을 바라본다면, 좀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나?
한번쯤은 이런 책 보면서, 혼자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P.S. 책속에 등장했던 국내 최대 시니어 전용 포털 사이트 유어스테이지(http://yourstage.com/). 은퇴에 대해서, 은퇴 이후에 대해서 정보를 얻기 좋은 곳인듯. 특히, 대당협전기라고, 당뇨에 관한 의학정보를 무협 소설 형식으로 쓴 건 꼭 읽어봐야 할듯. ^_^;
안녕하세요 ~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아 저도 많은 걸 돌아보게 되네요~ 감정이 묻어나오시게 너무 잘 쓰셨어요
많은 분들이 함께 보고 자신에 대한 고민을 하나씩 하나씩 벗겨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블로그에 너무 오랜만에 로그인하는 바람에 답글이 늦었습니다. 즐거운 한주 되시길.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