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위기 경영 – 대럴 릭비 지음, 정지택 옮김/청림출판 |
컨설팅 기업에서 일해 볼까하는 생각을 했었던적이 있었다. 그냥 특정 경영기법을 무슨 공식 대입하듯 메뉴얼대로 기업에 적용시키던 그런 컨설팅이 아니라 한의사처럼(필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한의사다. 마치 허준 같은..) 기업의 현재 건강 상태와 닥쳐온 상황을 근원부터 분석해서 궁극적으로 기업의 건강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에 집중하는 진정한 컨설팅 말이다. 그때부터 이런 저런 글로벌 컨설팅 기업들에 관심을 가지고 책들을 봤던 것 같다.
하지만, 매번 맥킨지나 BCG 이외에는 일반 대중들을 상대로 책을 잘 안써서 그런지 글로벌 컨설팅 기업들의 이야기들을 책으로 만나보기 힘들었었는데, 오랜만에 베인 엔 컴퍼니에서 출간한 책을 만났다.
베인 앤 컴퍼니
사실, 롱테일 경제학이라는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거의 접해보지 못했던 기업이었다. 롱테일 경제학이라는 책을 국내에 번역해서 들여오고, 그 책의 한국 적용판을 만들었던 분이 베인 엔 컴퍼니 파트너 출신이시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때부터 왠지 모르게 이 컨설팅 기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보다.
고객사를 보다 가치있게 해준다는 명확해 보이는 비전을 가진 컨설팅 기업으로, 메인 화면에 S&P500 지수와 자신들의 고객사의 주가추이를 비교해 놓은 그래프가 인상적이다. 단순해보이지만 이만큼 효과적이고 강렬하게 자기 PR하는 것도 쉽지 않지 싶다.
위기 = 위험과 기회
마침 금융위기가 발생한 상황이라, 책의 주제를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경영을 해야하는지, 아니 위기 상황에서 회사를 이끌때 주의해야할 점이 무엇인지 간략하게 요약해 놓은 지침서같은 책이다. 대단한 것들을 기대했다면 실망했을지도 모르지만.. 위기가 닥쳐왔을때 복잡하고도 방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막상 뭘해야할지 감잡기가 더 어렵지 않나 싶다. 되려 이렇게 단순화 시켜둔게 더 도움이 될런지도..
중요한 이슈들에 대해서는 다 한번씩 언급했다. 기본적인 현재 상태를 살펴보고 제대로 전략을 짰는지, 조직 구성은 괜찮은지, 비용관리는 잘 되는지, 현금흐름은 문제없는지, 가격 결정은 제대로 한건지 만약 위기 속에서도 왠만큼 회사가 정비되어 있다면, 그렇다면 이제 공격적으로 매출을 증대시킬 방안, 또는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릴만한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이야기.
위기라는게 위험과 기회의 준말이지 않던가. 모두에게 위험한 시기임에는 틀림없지만 반대로 모두가 어렵기 때문에 조금만 상황이 나아도 좋은 기회를 손쉽게 잡을 수 있는 찬스이기도 하다. 예를들어, 똑같이 돈을 벌던 두 회사가 위기를 당해 타격을 입었다. 이때, 한 회사는 나름 위기에 대한 방비가 되어 있었던 반면 다른 회사는 무방비 상태로 당했다. 매출이 급감하고 한 회사는 수익이 1/4로 한 회사는 1/2으로 줄었다고 할때, 다시 호황기가 찾아오면 두 회사의 이익 차이가 2배 차이가 날까? 아니다. 상대적으로 투자여력이 더 큰 회사가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했다면 결과는 10:1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를 보라. 모두가 위기를 겪고 있을때, 미리 확보했던 현금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 순식간에 경쟁자들을 따돌리지 않았던가?
아니면, 개인적으로는 두산, 한화와 롯데, GS를 비교하고 싶다. 2000년대 전세계 호황기에 이 네 회사의 행보는 전혀 달랐다. 두산과 한화는 호황기에 공격적인 사세 확장을 추진했다. 반면, 롯데와 GS는 투자를 시도하긴 했지만 무리하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최대한 유지하려 했다. 대표적인게, 대한통운이나 대우조선해양을 두고 붙었던 M&A 경쟁에서 볼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서 POSCO와 손을 잡았던 GS는 입찰 마감일날 돌연 POSCO와 연합을 포기한다. 먼저 입찰가를 제출하고 나중에 GS와 협상하려 했던 POSCO는 자격미달로 인수전에서 패하고, 결국 한화가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성공하게 된다.
GS가 결별을 선언했던 이유는 POSCO가 지나치게 비싼 가격에 인수가를 쓰려했기 때문이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의 수익성이나 수주잔고를 감안하면, 그리고 한화나 현대중공업이 공격적으로 경쟁에 나섰던 탓에 POSCO로써는 마음이 조급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GS입장에서는 아무리 좋은 인수건이라도 적절한 가격이 아니면 소용없다는, M&A 세계에서 자주 벌어지는 승자의 저주를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결국 돌이켜 생각해보면, GS의 판단은 옳았다. (최근 주요주주인 워렌 버핏의 반대로 POSCO는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포기하는 걸로 가닥을 잡았단다..)
롯데도 마찬가지. 호황기때 풍부한 현금으로 매번 M&A건이 있을때마다 주요 인수자로 회자되곤 했지만 매번 고배를 마셨다. 너무 싼 가격만 써냈던 탓에.. 그랬던 롯데가 2008년 금융위기가 발발하고 그 뒤로 무섭게 M&A를 추진했다. 국내외를 안가리고 거의 싹쓸이 하다싶이. 결과는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이 책의 이야기처럼 이 위기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향후 엄청난 차이를 불러오지 않을까 싶다.
유비무환
호황이 있으면 불황도 있기 마련이다. 영원한 호황도 영원한 불황도 없다. 그저 사이클로 매번 반복될 뿐이다. 하지만, 똑같은 역사가 수도없이 반복되는 걸 보면 사람들의 망각하는 기술도 가히 극강의 경지에 다다른게 아닌가 싶다.
이번 금융위기를 겪은 기업들이라면, 다시 한번 위기 경영에 대해서 고민해 봐야할테다. IMF를 겪으면서 기업의 현금흐름 관리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다면, 이번 금융위기를 통해 단순히 위기를 살아남아야 하는 문제로 인식할게 아니라 더 높이 비상할 수 있는 기회로 사는 지혜를 배웠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