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볼 1 – 앨리스 슈뢰더 지음, 이경식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백과사전에 준하는 두께의 책이었음에도 기어코 읽어보겠다고 아침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이 책을 뽑아(?) 들었다. 때아닌 아침운동을 겸해서 말이다. 그리고 한달여만에 다 읽었다. 1권만. 사실 2권은 두께가 그다지 두껍지 않아(?, 1권에 비해서.;;) 별다른 내용이 없을꺼라 생각했다. 하지만, 1권은 아직 1980년대 초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워렌 버펫
가치투자자의 대명사. 빌 게이츠에 이어 세계 2위 부자. 모 치킨집 할아버지를 떠올리게하는 인자한 인상의 정직하고 선한 기업가, 존경받는 기업가의 대명사. 그린스펀이 전방에서 미국 경제 대통령 역할을 했다면, 버펫은 직접 나서지 않고 다스리는 장막속 대통령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은 그 워렌 버펫의 좀더 세세한 삶을 담고 있다. 어린 시절은 어땧는지, 실제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이런 저런 일들이 일어났던 당시 상황은 어떠했는지, 버펫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전에 다른 책에서 볼 수 없는 많은 새로운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다.
혹여나 아직 이 책을 읽지않고 다른 스토리들을 통해 버펫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나름 워렌 버펫을 알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이 책을 보면서 내가 아는 것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돈벌레
이 책을 쓴 저자와 버펫은 제법 돈독한 사이였다고 한다. 그랬으니 자기 자서전을 부탁했겠지. 그러나 책을 쓰고 난 뒤로 두 사람 사이가 소원해졌단다. 책을 읽어보면 충분히 이해할만한 상황이다.
책에도 등장하지만 버펫은 남들에게 나쁜 사람으로 비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또한 사람들의 평판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평상시 아는 버펫에 대한 이미지는 이런 성격이 만들어낸 허상이지 않나 싶다. 다 틀린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확한 것도 아니니..) 그런 그를 ‘돈벌레’, ‘돈 버는 것이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으로 표현했으니.. 소송 안당한게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랬다. 어린 시절 ‘1000달러를 버는 100가지 방법’인가? 하는 책을 보고 감격해는 모습이나, 대학교에 들어갈때 이미 남부럽지 않을만큼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 아내가 돈 쓰는 것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에 막지는 못했지만 그 돈이 향후 얼마나 큰 돈이 될 수 있는 ‘자본’인지에 대해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는 것 등 돈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했다.
그렇다고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뭔가 누리기 위해서 돈을 벌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가진 재산은 전부 주식이었고 매번 투자할 자금이 모자라 했던 모습에서 버펫이 얼마나 돈 버는 것을 좋아하고 즐겼는지 알 수 있다. 그저 돈 버는 것 자체에서 희열을 느꼈던 사람이었다.
사업가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재능, 관심이 있게 마련인데 버펫은 ‘돈벌이’ 놀이에 관심이 많았고 재능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워렌 버펫이 주식투자해서 대박이 난 것으로 착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버펫이 가졌던 ‘돈벌이’ 재능을 한 쪽 면에서만 보고 내린 성급한 판단이다. 오히려 그는 고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님이나 기타 한 시대를 풍비했던 사업가들과 비교하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아는지 모르지만, 버펫은 11살때 처음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못지 않게 어린시절부터 자기만의 사업을 영위해왔다. 도매(?)로 껌을 한통사서 소매로 하나씩 나눠 팔아서 돈을 벌었는가 하면 일개 신문 배달부로 시작해서 대학교 들어갈때쯤에는 자기밑에 수십명의 배달부를 둔 신문배달업을 하기도 했다. (그가 사업을 생각하는 극진한 마음은 사춘기 시절 탈선에 길에 빠졌던 버펫을 협박했던 아버지 하워드의 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때 했던 협박은 ‘내일부터 신문배달 못하게 한다’는 것.;;)
그뿐인가? 골프장에서 골프공을 줍는 것을 시작으로 한 업자에게 중고 골프공을 공급받아 파는 일도 했었고, 장의차를 사서 렌트하는 사업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이발소에 핀볼기계를 설치해서 돈을 벌기도 했다. 이 모든 사업을 20살이 되기전에 했었다는 것, 그리고 이 사업을 통해서 현재 가치로는 억단위가 넘을만큼 돈을 벌었다는 사실.
투자가
게임이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사람도 있고 안된다는 사람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시뮬레이션이라는 것, 미리 간접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게임의 학습효과를 확신하는 편이다.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중 ‘캐피탈리즘’이라는 녀석이 있다. 게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잘 만들어진 게임인데, 말 그대로 나에게 주어진 초기 창업자금을 바탕으로 사업을 일으켜서 성공하는게 목적인 게임이다.
이 게임을 해보면, 처음 시작할때 편의점이나 슈퍼마켓 같은 유통업에서 시작을 하든, 농장을 지어서 농사나 낙농업을 시작하든, 작은 공장을 지어서 제조업을 시작하든, 부동산을 매입해서 임대업을 하든, 결국 돈이 일정수준이상을 넘어서면 돈을 추가로 벌 수 있는 곳은 ‘자본시장’ 밖에 없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사업을 하는 동안 ‘자본배분’이 가지는 중요함 등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게임이다.
워렌 버펫은 게임이 아니라 실제 현장 경험을 통해 이런 사실을 배웠다. 매번 새로운 회사를 창업하는 것보다 분별/판단 능력이 된다면 사업이 잘될 회사의 지분을 인수함으로써 ‘돈벌이’ 놀이를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다는 것. 단순히 우리가 쉽게 말하는 주식투자 개념으로 이 종목사서 몇 % 수익 올리고 다른 종목으로 갈아타서 또 몇 % 올린다는 접근이 아니라, 사업가로써 이 회사 지분을 인수해서 이익을 취하다가 기회가 되면 아예 최대주주 수준까지 지분을 인수해버린다. 그리고 이 회사가 보유한 자산을 활용해서 또 괜찮아보이는 회사 지분을 인수하고 뭐 이런식이다.
어떻게 보면 주식투자보다는 기업 M&A를 통한 사업 확장이라는게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이런 사실은 버펫과 멍거가 증권거래위원회 조사 당시 제출했던 지분 관계 도표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마치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복잡한 지분관계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스노볼 ..
투자에 대한 가르침을 기대했다기보다 내 삶에도 큰 영향을 미쳤던 한 인물의 알려지지 않은 삶은 궁금했었다. 스스로 밝히지 않았기에 매번 추측과 온갖 소문이 난무하다보니 마치 신화속에나 나올법한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기에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정말 그런 인물일까?
1권을 덮으면서, 구름속에 있었던 워렌버펫이 한 스테이크집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은 옆집 아저씨로 변했다. 병적으로 돈 버는 일에 매달리는 이 사람이 조금은 안쓰러워보이기도 한다. 또, 자기가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어린 나이에 발견했고 자기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문득 나를 돌아보게 된다. 버펫의 행보를 보면서 감탄했고, 조금이라도 닮아보고 싶어하는 사람으로써 내가 이 사람의 삶처럼 살게된다면 난 어떻게 할까?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본다. 탁월함(Excellence)의 추구는 참 짜릿해보이지만 평생을 함께하기로 한 동반자와의 관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가족들을 보자면 과연 그 삶을 살고 싶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