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마치고 급하게 갈 곳이 있어 저녁도 먹지 못한채 지하철역으로 내달렸다. 그래도 뭐라도 먹어야지라는 생각에, 지하철 편의점에 들렀다. 스낵 하나를 사고 지갑을 열었더니, 최근 발행된 5만원권 한장이 있었다. 값 지불을 위해 5만원 신권을 내밀었더니..
“잔돈 없어요. 오늘 아침에도 누가 5만원권 내밀던데.. 예의없..” …
아니, 5만원권은 돈 아닌가? 물건사고 돈 냈는데 예의없다는 이야기를 들을줄은 몰랐다. 그러나, 이런 일이 여기서만 있었던게 아니다. 막상 가지고 다니기 편해서 5만원권을 찾기는 했지만 여간해서는 쓸수가(?) 없다. 돈다발 큰거 가지고 갈때 부피줄이는거면 몰라도 실생활에서 쓰기에는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그러면서 누가, 도대체 왜 이 불편한 5만원 신권을 만들었나 싶었다. 쓰지도 않을껄 괜히 만들어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나 싶었다. 이 이들을 진행한 사람들은 이 정도도 생각 안해보고 일을 시작했을까? 그러지는 않았을테다.
그보다 아직 익숙하지 않음에는 오는 불편함을 너무 과장해서 받아들이고 있는게 아닌가 싶었다. 누구나 변화는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여기가 좋사오니..’ 그냥 머물고 싶은게 사람의 심리이자 본성인데, 그걸 거스르려니 힘든 것 뿐이다. 이 변화에 적응하는 시기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상의 편안함이 다가올테다.
비단 이번 5만원권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일들이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테다.
익숙함의 승리
개인적으로 몇몇 사건들을 보면서, ‘아, 우리나라는 초반만 버티면 뭐든 해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10여년전쯤 우리나라 금융계에 빅뱅이 불어닥쳤다. ‘금융실명제’라는 제도가 시행되었던 것이다. 당시 어린 나이탓에 기억나는거라고는 이 일들을 진행하던 핵심 맴버들이 몇달이나 여관에 갇혀 지냈다더라는 에피소드 뿐이지만, 분명 당시 이 변화에 반대하는 엄청난 논란이 있었을테다.
들어나지 않은 검은 자본이 문제긴 하지만, 한 나라의 경제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고 만약 무리해서 금융실명제를 시행한다면 나라 경제가 흔들릴지 모른다. 특히, 선진국들조차 시도하지 못하는 제도를 이제 막 커가는 나라가 시행한다는건 무리다 라는. 그러나 그런 반응에도 제도는 시행되었고, 지금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또 이런일도 있었다. 국민의 약물 오남용을 막겠다던 의약분업은 의사들이 대규모 파업을 강행하는 등 굉장한 사회 이슈가 되었었다. 전문직종의 밥그릇 싸움이라는 인상이 강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 일로 엄청난 문제가 생기고 변화가 생길 것 같았는데, 지금보면 참 별일없이 지나갔다.
최근에는 한미FTA로 한국 전체가 시끄러웠었다. 아직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민감한 문제인데, 결과적으로는 별일없이 지나간다. 한 미국 언론의 말처럼 촛불시위 당시 우리나라 국민들은 절대 미국산 소고기는 먹지 않을 것처럼 보였지만, 앞으로 이전의 수입량보다 더 많이 먹게 될 것이라는게 현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서울의 택시요금 인상은 어떤가? 대다수 공공요금 인상이 그런게 아닌가 싶다. 인상 직후에는 상당히 시끄럽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다시는 택시탈일이 없을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예전처럼 택시를 타고 있는 나를 발견했던 것 처럼 익숙함이 승리하게 되는 것 같다.
냄비 속 개구리 ..
우리는 다들 냄비 속의 개구리다. 처음 물이 따끈해질때, 살짝 놀라서 발악을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온도가 적응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유유히 수영을 즐긴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벗어나 이것이 사회 현상의 흐름이 아닌가 싶다. 특히,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좀더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 같고. (그래서 냄비 근성이라 그러나?)
익숙함이라는 것, 참 무서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