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스완(The Black Swan) by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2008.12)

By | 2008년 12월 16일







블랙 스완10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동녘사이언스

책을 덮고 떠오르는 단어들은 ‘통섭’, ‘통계’, 평균’, ‘이야기 짓기 오류’, ‘이벤트’, ‘불확실성’, ‘극한’. 일주일에 1권의 책은 읽으리라 마음을 먹었었는데, 이 책 보느라 2 주를 소비했다.


통섭


내용이 그리 쉽지 않았으나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 저자가 비판하는게 지금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이다. 향후 시장을 전망하는, 저자가 극도로 비판하는 일을 내가 하고 있다. 뭐 입사초기부터 이 부분에 대해서 나 스스로도 고민이 많았던터라 저자의 주장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기보다 내 이야기 같아서 내용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이해가 되서 계속 읽어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을 보면서 통섭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이유는 저자의 박식함(?) 때문이다. 책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저자는 철학, 문학, 수학,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 폭넓은 이해를 갖춘 사람이다. 비록 세부적인 내용에서 잘못 알고 있거나 틀린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를 이해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었고 그랬기에 이런 ‘삐딱 노선’을 타면서 이야기를 풀 수 있었던 것이다.


그저 한 분야에 코 박고 사는 전문가들은 자기가 아는 영역을 넘어서는 순간 ‘바보’가 된다. 그러다 보면 정말 많은 부분을 놓칠 수 밖에 없는데, 저자처럼 폭넓게 바라보면 의외로 생각지 못했던 관점들을 발견하게 되나보다.


(덧붙여서, 박식하고 유식하다는 것, 전문적이라는 것에 대해서 든 생각은 결국 ‘언어’와 ‘이해력’의 문제라는 것. 책이 어렵게 느껴지는 건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 내용을 설명하는 ‘용어’가 생소한 탓이다. 간략한 설명을 위해 함축적 단어들을 쓰고 있는데, 이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 탓해 왠지 내가 무식해 보이고 이런 용어를 쏟아내는 사람이 유식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 티를 내려면 그들만의 용어를 쓸줄 알아야 하는데, 사실 그런 용어를 아는 것이 곧 전문가 또는 실력있는 사람을 뒷받침 해주지 않는다는 점, 잊지 말아야 할테다.)


극한, 이벤트, 검은 백조


이 책의 제목은 우리가 잘 아는, ‘백조는 희다’라는 명제가 어떻게 ‘거짓’으로 증명되었는가에서 유래한 것이다. 사람들이 편의를 위해, 또는 자기가 납득하기 위해서 실제 세상을 인위적으로 변화시켜 이해를 하는데, 처음에는 이해를 위한 가설이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이 ‘진리’로 바뀐다.


그러나 저자는 이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표출한다. 세상은 안 그런데 왜들 그걸 사실로 받아들이는지 모르겠다는 입장?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떠올려보면 쉽다. 가상 세계 속에 빠져사는 사람들에게 그게 현실의 세계가 아니라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를 해주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게 아니라고해도 왜 그렇게 왜곡해서 보냐고 따지는 정도?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가 1997년 파산했다. 노벨상을 수상했던 천재들이 운영하던 헤지펀드였고, 그들이 노벨상을 받았던 그 방식으로 완전무결한 운용을 했음에도 다른 얼빵한 매니저가 자기 마음대로 투자해서 망하는 다른 회사들처럼 망했다.


왜? 애시당초 그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인 ‘절대 벌어질 수 없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파산한다는건 당시로써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치 9.11 테러가 발생하기전 비행기로 쌍둥이 빌딩에 부딛힌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었을 만큼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


그럼에도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는 그런 극한의 경우, 특이한 이벤트의 경우는 죄다 속아내야 한다. 그런 특이한 케이스가 들어가면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깔끔하게 정리가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세상인데,, 왜 그걸 인정하지 못하는지..


통계적 분석


회사에서 다양한 통계적 방법론을 가지고 미래를 전망하는 일을 하곤 한다. 필자가 통계 전문가는 아니고 따로 통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이 따로 있는데, 이전에 환율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장기간의 환율 관련 데이터를 바탕으로 앞으로 환율 움직임을 예축하는 모형에 대해서 연구하던 결과를 보여줬었는데, 재미있게도 1998년쯤을 기점으로 나누어서 연구를 해야만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IMF라는 변수는 도저히 일반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이례적인 이벤트였기에, 이벤트에 대해 연구하는 모델을 구현하든 아니면 이 데이터는 빼고 그 이후 데이터로 분석을 해야 통계적으로 유의한, 그리고 우리가 납득할만한 결과를 볼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 이야기를 했던 것이 2007년초쯤이었던 것 같은데.. 문득 최근 환율이 1년 사이 40~50% 급등한 것을 보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이것 또한 일반적이지 않은 유례없는 사실일텐데, 일반적이지 않은 일들이 왜 이리 자주 일어나는지..


이야기짓기 오류 – 인과관계?


시간이 지나고 IMF때 환율이라든지, 지금의 환율 변동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떤 방법이 되었든 설명이 가능하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지금 발생한 현상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지 않는가? 아니면 IMF 상황에 대한 분석 논문, 보고서를 한번 찾아보라 흘러넘친다.


하지만, 과연 그 분석들이 정말 사실일까?


저자는 ‘이야기짓기 오류’라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던졌다. 어제 주가가 하락한 것은 미국의 경기 악화에 대한 불안 심리지만 오늘의 주가 상승은 경기가 이제 바닥에 도달했다는 인식에 따른 저가 매수세 때문이라고 수많은 뉴스매체들이 보도한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주가가 하락하면, 다시 미국 경기가 여전히 나빠서.. 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과연 정말 이들사이에 무슨 연관 관계가 있었을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게 실제 일이 발생한 사실과 관계가 있을까? 모를 일이다. 단지 우리 머리로 이해를 하려면 ‘인과관계’ 설정이 되어야 하기에, 그냥 받아들이는게 아닌가?


불확실성의 세상


이 책은 세상이 가진 불확실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떤 측면에서는 미래학과 깊은 관계를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네트워크 과학, 복잡계와 깊은 관계를 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어떤 면에서는 수확에 관한 책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이 모든 내용은 결국 ‘불확실성’으로 귀결된다.


저자는 무슨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조차 없을 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벌어지는게 세상인데, 오히려 그런 예측을 하려는 것 자체가 무의미 하다는 이야기다.


대신, 이런 불확실한 세상에서 미래를 대비하라는 충고는 해준다. 즉, 최악의 경우가 발생할 수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그에 따른 준비를 하라고 한다. 예를들어 저자는 자산의 80%를 흔히 말하는 ‘안전자산’에 넣어두고 나머지 20% 가량을 ‘벤처캐피탈’, ‘헤지펀드’ 같은 위험 자산에 투자한다. 즉, 혹시나 검은백조가 등장해서 시장이 지금처럼 ‘박살’이 나더라도 최소한 80%의 자산 가치는 유지할 수 있고, 혹시나 시장이 겁나게 잘나갈 경우 20%의 위험자산 투자로 기회를 살릴 수 있다는게 설명이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결국 저자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시나리오’로 가는 것 같다. 미래에 대해서, 앞날을 예측하려는 모든 노력이 결국은 ‘시나리오’, 또는 ‘대안적 미래’로 귀결된다는 것. 어차피 앞날은 알 수 없다. 불확실성이 너무 커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정확하게 알아맞춘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보다는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큰 만큼 이런 경우를 가정해서 ‘비상계획(Contingency Plan)’을 짜두라는 이야기다.


정규분포곡선 ..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는 정규분포곡선이 자리하고 있다. 경제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전제로 ‘합리적인 사람’을 들듯이 뭘하든 세상이 일단 ‘정규분포곡선’이 들어맞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시작한다. 그러기에 만약 이 전제들이 틀려버리게 되면 뒤에 나오는 그 무수하고 어렵고 복잡하고 현란한 이야기는 다 ‘뻘짓’이 된다.


결론적으로 세상은 ‘정규분포곡선’을 따르지 않는다.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세상에 모든 백조는 흰색이다 라는 명제가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세상에는 정규분포곡선에 맞지 않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는 생각의 틀을 넓혀준다. 어쩌면 여러분이 알고 있는 지식과 그 수많은 사실들이 ‘거짓’일지도 모른다. 잘못되고 틀린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까운 시간들을 낭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러분이 이해력이 딸리고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틀린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하다보니 어렵고 복잡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비록 쉽지 않은, 잘 읽혀지지 않는 책이지만 한번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정답은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 찾을 수 없는 답을 찾기 위해 파고들기 전에, 이 책을 읽고 정답이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폭넓게 생각을 해보라고 권한다.


3 thoughts on “블랙스완(The Black Swan) by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2008.12)

    1. man

      저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최근 안철수 교수님께서 블로거들과 간담회 가지신 것 같던데, 거기서 미래 인재 조건으로 ‘자신의 한계를 넓혀가려는 노력’이라고 하셨다 그러네요. ^_^

  1. Pingback: 펜시브의 무권해석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