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고, 기록하라..

By | 2008년 1월 21일

귀찮다. 적어서 뭐하냐. 안적어도 나는 다 안다…

얼마나 초,중,고등학교 시절 필기하는 것에 시달렸으면 대학교 이후로 사람들은 점점 기록하는 것을 기피하기 시작한다. (다 그런건 아니지만 내 주변을 볼때, 일반적인 현상이지 않을까 싶다.) 일본에서 들어온 수많은 실용서들이 메모, 기록의 중요성을 역설하지만 막상해보려면 많이 귀찮고 잘 안되서 더 그런 생각들을 하는 걸까?

기록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무엇인가를 암기하기 위해서 여러번 적는 경우도 있지만, 기록한다는 것은 분석할 수 있는 기본자료를 만든다는 성격이 더 강하다. 아, 왜,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 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때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당신, 어떤 성격테스트나 다른 종류의 테스트를 통해 자신을 파악하려고 하지만 그것보다 내가 남겼던 기록을 통해 나를 확인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나 뿐만 아니라 조직도 마찬가지..

기록, 조직에도 필요하다.

사이프러스에 도착하고 한두달 지내면서 인터서브의 이모저모를 뒤져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디렉터들과 함께 있었기에, 그리고 내부 인트라넷을 보수하는 작업을 했기에 내부 문서며 다양한 자료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그 중 아주 재미있는 자료 하나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일명 ‘Job Description’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말로 ‘작업 설명서’ 정도가 될 것 같다. 디렉터, 과연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나 다양한 상황에서 그가 맡아야 하는 역할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이 적혀있는 책이었다. 결국 이 조직은 이 책을 통해 디렉터의 역할을 정의하고 그 자리에 앉아야 하는 사람이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를 정확하게 명시할 수 있었다. 잠시 디렉터의 자리가 공석이 되더라도 그가 어떤 일을 하는지 메뉴얼을 통해 다 알수가 있었기에 여러 사람들이 업무를 분담해 그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게 하는 일도 가능했다.

여러모로 조직의 시스템화를 도왔던 이런 메뉴얼이 어떻게 탄생했을까? 내 생각에는 150년의 역사 동안 수많은 디렉터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해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자신들이 조직의 필요에 의해 했던 일들이나 자기가 생각하기 필요한 일인것 같아 했던 일들을 기록해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메뉴얼로 만든게 아닌가 유추한다. 지금도 메뉴얼이 계속 변해가는 걸 보면 아마 맞지 않을까 싶다.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기업의 경우, 모든 직원들이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기록해 볼 것을 권한다. 한 달은 좀 짧고 약 3~6개월 정도 매일 매일 하는 일에 대해 기록을 하다보면 조직에서 하고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파악이 되며 각자의 위치가 어떤 일을 하는 자리인지에 대한 구분이 가능해진다. 그와함께 중복되는 일이나 필요없는 일, 또는 중요한 업무에 대한 구분이 가능해지면서 나름대로 그 조직만의 시스템을 만들 수 있어진다.

IT 기술이 발달하면서 시작된 ERM 도 결국 기업내부에서 일어나는 총체적인 일들에 대한 기록 DB가 아닌가? 이곳의 자료들을 통해 회사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분석하게 되는 걸 보지 않는가? 기록이 방법이 변하기는 했지만, 기록은 훌륭한 분석 도구다.

기록, 너 자신을 알기 위한 도구

그렇다면 개인은? 더더욱 절실하게 필요하다.

먼저 시간에 대한 기록. 이건 내가 굳이 말로 하는 것 보다 책 한권을 추천한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던가? 아무튼 ‘류비셰프’라는 이름으로 책을 검색하면 구 소련 출신의 한 학자에 관한 책이 나온다. 이 사람이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보다 이 사람의 시간 관리법에 관심을 가져볼 것을 권한다.

그는 모든 시간을 기록했다. 편지를 쓴다거나 책을 읽거나 연구하는 것은 물론 산책하는 것, 그리고 심지어는 시간관리하는 시간까지도 기록했던 사람이다. 이 기록은 매달, 매년 통계를 내기 위한 기초 자료로 사용되며 이를 통해 자기가 해야하는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지 파악하고 평균적으로 자기가 일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을 분석해 앞으로 할일에 대한 시간 배분까지 했다.

(여담이지만, 류비셰프 평균 4~5시간 정도 꼭 해야하는 일에 투자한 하루는 성공한 하루라고 평가했다. 그렇게 철저히 관리했던 사람도 대다수의 시간을 중요한 일을 위해 쓰지 못했다는 이야기. 난 시간관리 잘한다고? 일단 한달 정도만 자기가 쓴 시간을 기록해보자. MS아웃룩이나 스케쥴 관리 프로그램 쓰면 쉽다.)

류비셰프가 추천한 방법은 드러커가 ‘성과를 향한 도전’이라는 책에서 밝힌 방법과 동일하다. 즉, 시간을 철저히 기록해 자기가 어떤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지 분석하고 필요한 일에 시간을 보다 많이 배치함으로써 보다 높은 성과를 올리도록 충고하고 있다. 결국 시간 기록을 통해 평상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으며, 항상 나는 중요한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고, 나름대로 잘 살고있다고 바쁘게 열심히 살고있다고 착각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다는 현실을 가르쳐주는 아주 유용한 성적표를 받아 볼 수 있다.

시간이외에, 돈도 기록할 필요가 있다. 용돈 기입장 또는 가계부를 한번 기록해보라. 십원짜리 하나까지 다 맞춰서 쓰는 정성도 좋지만 대략적인 쓰임새만 기록해보아도 놀라온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돈이 가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내가 어떤 일에 집중하고 있는지 잘~ 살펴볼 수 있다.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말이다. 난 쓴것도 없는데 돈이 없다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기록, 착각의 늪에서 당신을 구한다..

사람은 모든 상황을 주관적으로 받아들이고 판단한다. 암흑속에 갖힌 사람은 곧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생각해버린다. 다시 객관적인 시계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저 머리로만 ‘난 이런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틀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평상시 나름대로 열심히 바쁘게 잘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그런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일단 당신의 삶을 전반적으로 꾸준히 기록해볼 것을 권한다.

서울에서 잠시 뵈었었던 비틀맵의 김은영 사장님께서 시간관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당신께서는 평상시 참 바쁘게 시간을 잘 쓰신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 류비셰프의 책을 읽고 시간을 기록하면서 하루에 2~3시간 정도만을 핵심적인 업무를 위해 사용한다는 걸 보시고 깜짝놀랐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당신도, 당신 조직도 예외일 수 없다.
나 자신을, 우리 조직을 보다 잘 알기 위해 기록하고 기록하자.

8 thoughts on “기록하고, 기록하라..

    1. man

      아홉가지님, 자주 들러주시네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회사에서 오전에 해야할 업무를 깜빡하고 퇴근시간이 되어서야 일을 챙기시던 상사의 재촉을 받고 처리했네요. 어디든 쓰지 않으면, 이제 돌아서면 잊어먹는다는.. ㅜㅜ

      그나저나, 필명이 특이하시네요. ‘아홉가지’ 의미가 뭘까요? ^^;

  1. 박양

    무엇이든지 기록해놓는 습관을 동경해 많이 따라해봤지만
    자꾸 내가 기록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더라구요;
    저도 기록하는 습관이 정말 몸에 좀 배었으면 좋겠어요..ㅜ

    1. man

      아이디어가 많았던 인물들, 뭔가 한건 했던 인물들을 보면 침대 옆에 메모지와 펜을 두었다고 합니다. 잠결에 떠오른거 혹시 잊어먹을까봐.. ^_^

      기록한다는 건 참 좋은 습관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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