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드러커 자서전 – 피터 드러커 지음, 이동현 옮김/한국경제신문 |
심리학의 대가 프로이트ㆍ미디어의 예지자 마셜 맥루안ㆍ잡지왕 헨리 루스ㆍGM의 경영자 앨프레드 슬론.. 아니 이런 인물들 뿐만아니라 세계가 급격하게 변해가던 시기 바로 그 시대를 이끌어가던 역사의 현장에서 그 전체를 내려볼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너무 도 부럽다.
피터 드러커. 역사와 법, 철학,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과 다양한 인물들을 만난다거나 직접 경험했던 엄청난 경험들이 그의 탁월한 통찰력을 가지게 해주었나보다. 모든 경영인들의 멘토이자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
드러커가 썼던 책들 중 몇 권은 읽어보았지만, 아직 전체를 다 체계적으로 읽어본적이 없기에 한번 읽어보려고 먼저 그 책을 쓴 저자를 이해하기 위해 자서전을 들었다. 다행히도 자기에 관한 이야기보다 주변 사람들, 자신에게 영향을 미쳤던 인물들에 대해 회상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 좀더 객관적으로 드러커를 이해할 수 가 있었다.
프로이트 같은 경우, 직접 만난 것은 식당에 가족끼리 밥 먹으러 갔다가 잠깐 마주친 것 뿐이었으나 어머니를 통해서 (그녀의 어머니가 의학 공부를 했었기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강의를 듣곤 했었다고 한다.) 들었던 내용들과 이후 책을 통해 만났던 그에 대해 회상하면서 글을 썼다. 그러기에 만나서 어떤 영향을 받았다기 보다 책을 통해서 이야기를 통해서 만났던 인물임에도 아주 오랫동안 만났던 사람들과 대등한 분량의 글을 남김으로써 그가 드러커에게 미쳤던 영향이나 그에 대한 드러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뒤에도 등장하는 인물들, 자주 만나는 인물들도 있었으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집을 방문해 만나는 인물들도 있었다. 어쨓든 만난 기간에 없이 드러커가 존재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드러커가 이야기했던 인물들 중 2 명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한 명은 헨리 키신저의 멘토이자 그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외무장관이 되도록 지대한 공헌, 아니 사실상 그가 그 자리에 서도록 만든 인물이었다. 성이 뭐였는지 모르겠는데, 크레머 라고 무역회사 견습사원을 하면서 법학 공부를 하던 드러커와 함께 젊은 법학도 였었다. 말이 통해는 사이라서 제법 오랜동안 교제를 나눴던 것 같은데, 아무튼 이 사람에게는 2 가지 꿈이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육군 참모총장의 자문이 되는 것과 유명한 외무장관의 멘토가 되는 일이었다. 젊은 날 크레머나 드러커 두 사람다 이 이야기를 허망한 꿈으로 생각하고 넘겼다고 한다. (자기 스스로 꿈을 허망하다고 봤다니.. 참..;;)
그러나 말도 안되게 크레머는 두 가지 꿈을 모두 이루고 만다. 나치를 지질이도 싫어하던 크레머가 미군에 들어가 급속 승진을 하다가 나중에 은퇴를 하고 앉았던 자리가 육군 참모총장의 유럽 정치 자문이었다. 그리고 자기가 이등병 시절 열변을 토하던 한 토론장에서 날카로운 질문을 날리던 일등병을 눈여겨 보고 이후 그를 적극적으로 키워준다. 2 차 대전이 끝나고 뉴욕 시민대학(? 아무튼 수준 낮은 대학.;;)에 진학하려는 그를 하버드의 교수들에게 소개하고 결국 그들의 애제자가 되도록 주선해 그로 하여금 하버드의 교수가 될때까지 열심히 키웠고 결국 그는 외무장관이 되었다. 그랬다. 그가 키신저였다.
꿈 꾸는 자만이 꿈을 이룰 수 있다 그랬던가? 그 대표적인 예로 들기 좋아보이는 인물이라 인상적이었고, 두번째 인물은 드러커가 빈을 떠나 아무 연고없던 영국을 가서 만나게 된 인물이다.
아, 드러커가 영국에서 처음 잡았던 직장도 참 인상적이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투자자문사 정도 될래나? 무슨 일을 해야하나 고민하면서 영국에 갔는데, 그 다음날로 취직이 되었고 그 회사에서 증권 분석과 공동 대표들의 비서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3 년 정도 일했다는데 여기서의 경험, 그리고 만났던 사람들 또한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아무튼 그가 이 회사에 머물때, 네덜란드에서 오는 괴짜 사업가를 만나게 된다. 어쩌면 PB 나 PEF 펀드 매니저의 중간쯤 되는 인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네덜란드의 부호들의 재산을 대신 운용해주고 그 수수료를 받는 사람이었는데, 수익이 엄청났었다고 한다. 이름이 발렘 파르봄 이었던가?
아무튼 엉망이 되어가는 회사에게 탁월한 컨설팅과 투자를 병행해 높은 수익을 올렸던 사람이다. 사업 영역은 두 가지, ‘투자 사업’과 ‘투기 사업’. (책에는 다른 표현이었는데, 내가 받아들이기는 이런 표현이 더 정확해 보였다.) 투자 사업은 파르봄 자신의 실수만 없다면 충분히 성공 가능한 안전한 사업으로 리스크에 대한 책임을 파르봄도 지는 영역이었고, 수익률은 대체로 100% 기준이었다고 한다. 투기 사업은 성공만 한다면 대박이지만 실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사업으로 리스크에 대한 책임을 투자자가 전적으로 지게 되어있었고, 성공시 수익률은 통상 500% 정도 였다고 한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책으로 써놨어도 괜찮았을 만큼 탁월한 투자자인 동시에 컨설턴트였던 것 같다. 잘 알지 못하는 기업도 기회가 되겠다 싶으면 집에 틀어박혀서 충분히 분석하고 전체 전략을 그려서 그 기업에 사업안을 제시하고 그 제안은 거의 영락없이 받아 들여졌었나 보다.
그런데, 그냥 이 정도에서 끝났으면 그도 탁월한 능력을 가진 투자자로만 내 기억에 남았을 텐데 그가 던졌던 이야기가 그로 하여금 내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되게 만들었다. 스웨덴 성냥왕 크뢰거의 사업이 거덜났을때, (발렌베리가의 대표기업 에릭슨 – 핀란드에 노키아가 있다면 스웨덴에는 에릭슨이 있다. 유명한 통신, 전화기 회사. – 의 지분을 인수해 경영권을 뺏어 오는 등 무리한 확장으로 망하게 된다. 이때 발렌베리가가 그 난국에서 에릭슨의 경영권을 다시 찾아오게 된다. 과정이 좀 복잡하기는 했다. 어쨓든 워낙 큰 재벌이 망하는 바람에 유럽 전역에 눈치 빠른 투자자들에게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던 것 같다.) 그의 채권을 인수하는 문제를 두고 그가 한마디를 날렸다. 실패할 위험이 거의 없는 정크 본드를 살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 기회를 거부하면서..
“당신들이 그 채권을 사려는 이유는 단 하나, 확실한 이익을 얻기 위해서죠. 난 내가 그 회사를 위해 기여하고 뭔가 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면 투자하지 않소. 머리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은 오래전에 버렸지요..”
Win-Win 인가? 헤지 펀드니 투기 펀드니 하면서 투자 수익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툭 던지는 한 마디. 나만 수익을 얻어서는 그 가치가 절반으로 준다는, 함께 얻는게 있어야 제대로 가치를 발현하는 투자라는 이야기. 이 한 마디에 그가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와버렸다. ^_^;
이런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드러커의 엄청난 독서량과 그런 환경이 많이 부러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할때즘 드러커는 그냥 학위를 따기위해 들어가는 대학에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대학 진학을 원하셨고 드러커는 특별히 해야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대학을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뭔가 할만한거리가 없을까 하여 당시 교수로 있던 삼촌에게 법학 분야에서의 난제가 뭔지를 물어보고 그에 대한 논문을 쓰려고 도서관에 틀어 박힌다. (당시 일반인의 도서관 접근이 힘들었지만 도서관 관장이 아버지 친구랑 방 하나까지 얻어서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때 온갖 철학 서적이며 법학 서적을 두루 섭렵하고 논문들도 읽고는 자기는 공부를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는 무역회사 견습사원을 거쳐 ‘구경꾼’으로서 자신의 삶을 살게 된다.
부럽다. 나도 드러커가 정의한 ‘구경꾼’의 자질을 갖추었음에도 아직 그런 독서량과 사고력, 그리고 경험은 갖추지를 못했다. 그리고 드러커가 보여주었던 탁월한 판단력도. 그에게 여러 번의 달콤한 유혹이 찾아왔었다. 한번은 파르봄이 미국으로 가는 드러커에게 자신의 미국 지사가 되어달라는 조건으로 3 년동안 연간 2만 5천 파운드의 연봉을 제시했다. (느낌으로 지금으로 따지면 연봉 1억 이상이지 않을까 싶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그냥 만약을 위해 그 역할만 맡아주면 되었지만, 그는 거절한다. 그 역할을 맡는 동안 다른 일은 하지 말아달라는 조건 때문에..
그 뒤에 타임지, 포춘을 만들었던 헨리 루스에게 아주 좋은 자리로 스카웃 제의를 받게 된다. 연봉이며 대우는 최고였는데, 그는 거절한다. 오히려 그 자리가 자기를 망가뜨릴 것 같다는 생각에. 맞았다. 이후 타임지에 근무했던 많은 사람들이 상당한 연봉과 복지를 누렸지만, 드러커는 그들을 실패자로 규명해버렸다. 그 자리의 안락함에 빠져 나태한 삶만을 사는 그들은 더이상 ‘발전’이 없는 실패자들이었다.
확실히 그는 ‘구경꾼’이었다. 뒷날 사람들이 경영학의 아버지나 경영인들의 멘토로 추앙했지만, 결국 그는 ‘구경꾼’으로써 자기가 본 이야기 들은 이야기들을 기준으로 글을 쓰거나 충고하는 것 이외에 직접적인 행동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피터 드러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만큼 재미있는 인물이다. 나도 이 만한 인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드러커 당시 세계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움직였고 드러커는 그 중심에 항상 머물렀다. 이제 세계의 중심이 미국을 떠나 아시아로 오지 않는가? 아시아에서 중동 쪽으로 흘러갈 세계의 중심에 내가 있지 않는가? 나라고 못할게 무엇인가?
훗날 내 자서전을 읽은 한 젊은이가 이런 마음을 가질 정도의 인물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해본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