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4. 10년 후, 한국 by 공병호

By | 2008년 1월 5일






10년 후, 한국10점
공병호 지음/해냄(네오북)
‘현실을 인정하라..’

이 책의 모토인 것 같다. 지금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그저 주어진데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눈 가리개를 풀고 현실을 즉시하라는 이야기 말이다. 마치 성경 속에서 이스라엘 왕 아합이 전쟁을 준비하면서 하나님께 전쟁을 할지에 대해 물었을때, 선지자 미가야는 진실을 고했으나 부정적인 그 이야기에 왕이 싫어라 하고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가 거짓으로 승리를 점치며 전쟁하라는 이야기를 했을때 그 말을 진실로 받아드리고 전쟁에 나갔다가 크게 패하는 모습처럼 말이다. 사람 욕심에 뻔한 현실을 보면서도 자기 마음에 끌리는데로 해석하려는 마음이 강한 것 같다.

이 책은 철저히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가치관에 기반해서 세계를 바라본 책이다. 출판이후 제법 논란을 불러 일으켰을듯 해보일만큼 한 쪽으로 쏠려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불행히도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들이다. 인정하기 싫은 마음 가득하지만, 감정적으로 굴복이 되지 않지만 현실이다.

세계화, 무한경쟁에 정말 반대하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는 참 안타까운 이야기이나 멀리 갈 것도없이 지난 10년 동안 한국이 겪어왔던 변화를 보자면 우리도 어쩔수없이 세계화와 무한경쟁으로 한걸음씩 다가서고 있다.

제법 개방적이라고 자부하던 나 조차도 이 책을 보면서 눈쌀이 조금 지푸려질만큼 단호하게 쓰여진 책이었다. 한국의 미래는 지극히 어둡고도 불안하다는 이야기. 지금 이 상태로 간다면 과연 이 무한 경쟁의 시대 그것도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있는 불쌍한 한 반도국가가 살아갈 수 있겠냐는 저자의 질문에 우리가 그렇게 못났나라는 반발심이 들기는 하지만, 이성적으로는 현실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어진다.

우리는 아직 인정하기 싫어하지만, 세계는 평평해지고 있다. 별 신경 안쓰고 있었는데, 이제 표준화 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단일화 되어가고 있다. 언젠가 한국에서만 통하전 전화가 외국에서도 쓸 수 있어지고, 내가 작성한 문서를 다른 나라 사람도 열어 볼 수 있는 시대가 와버렸다. 2001년 MCP (Microsoft Certificated Professional)를 준비하면서 windows 2000 server 에서 한 다국적 기업이 다양한 나라의 직원들이 입력한 메모장의 자료를 아무탈 없이 볼 수 있는 기능에 대한 설명이 있었었고, 장거리 여행을 가서도 자기가 사용하던 것과 거의 동일한 환경에서 작업이 가능한 것을 설명하던 기능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지나갔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세계에 또 하나의 표준이 생기는 중이었던 것 같다.

한글과 컴퓨터의 ‘한글’ 이라는 워드 프로세서가 민족적 감성주의(?)의 힘을 빌어 MS word 를 물리쳤다는 기사를 읽었던 적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한글’을 사용하는 기업이나 단체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표준 경쟁에서 밀린 것 이다. 그나마 국가적으로 독점을 막기위해 우회적 지원과 강제적으로 사용하도록 하면서 명맥만 유지할 뿐이다.

컴퓨터 기술을 설명하고 싶은게 아니라, 이렇게 세계는 평평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커통신비용’이나 ‘이동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높아서 울며 겨자먹기로 지역에 한정될 수 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그 비용이 0 에 가까워지면서 철저하게 ‘이익’ 중심으로 움직여 가고 있다.

즉,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환경이나 상황은 바로 죄악이다. 감성적으로, 감정적으로 절대 인정할 수 없고 어떻게 사람들이 그렇게 비인간적일 수 있냐고 그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면 행복할 수 있겠냐고 반박하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 조차도 이 대열에서 벗어나서는 살 수 없다.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산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자기 혼자 삶을 챙겨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적어도 이 세상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 대열에서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반대로 가자는 이야기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람이 만드는 제도이기에 이상적인 모습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보다는 사람의 원시적인 본능을 따르는 제도들이 사람들의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대세로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기에 개인의 욕심이나 욕구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신자유주의’가 대세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옳고 그른 것은 두 번째 문제다.

나 또한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잘 안다.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세계화가 절대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 것 또한 잘 안다. 그 폐해가 만만치 않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다 같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지만, 결국 사람의 욕심, 원시적인 본능들 때문에 실패했던 공산주의나 가장 이상적이라고들 말하는 초대 교회들 또한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이상과 현실의 그 지독한 괴리.

언듯 보기에는 내가 그 시스템을 이루는 구성원으로써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피면 결국 그 시스템이 나를 움직이고 마는 현실. 그러기에 높은 자리에 올라 시스템을 바꿔보겠다고들 말하지만 마치 그 자리는 결정권과 능력을 가진 것 같지만 막상 올라서면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허무함을 느끼게 되는 현실.

나름대로 이것을 하나의 ‘툴’로 인식하고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보지만 그것조차도 내 능력밖의 일이지 싶다. 단지 어느 시대인지는 모르겠으나 악한 왕이 판치던 시대에 굳굳히 하나님은 섬기던 의인들을 동굴 속에 숨기고 먹여 살렸던 사람처럼, 2차 대전 당시 유대인들을 숨겨 살렸던 쉰 들러처럼 이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램만 해볼 뿐이다.

암울한 책인 만큼 서평까지 암울해진다.
맘을 좀 추스리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내가 갈 길을 점검해봐야겠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