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로 인해 전세계 경제가 휘청이고 있다. 미국 5대 투자 은행이 이미 해체된 것은 물론이며 (베어스턴스, 리만 브라더스는 파산, 메릴린치는 BOA에 인수, JP모건과 골드만 삭스는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했다.) 미국의 빅 3 자동차 업체가 파산과 회생의 기로에서 위험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다른 업계도 만만치 않다. 국내에서도 한창 덩치를 키우던 C&그룹이 자금난에 부딛혀 결국 C&중공업과 C&우방의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상황이 어렵다 보니 기업들이 생존을 위한 투쟁에 돌입했다. 마치 동물들이 추운 겨울 겨울잠을 선택하듯, 어려운 시기를 피할 수 없으니 이 시기에는 최소한 살아남는 것에 사활을 거는게 아닌가 싶다.
역시, 이런때 가장 쉽게 선택되는 도구가 ‘비용 절감’이다.
비용 절감
기업들은 자신들의 재무제표를 펼쳐놓고 머리터지게 고민할터다. 과연 무슨 비용을 줄일 수 있을까? 일단, 냉/난방비는 기본이고 전기비, 종이 및 기타 소비재 용품 사용을 줄이려 할 것이다. 아마 재활용을 적극 권장할테고, 좀 심각한 곳에서는 임대료 때문에 사무실을 옮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업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런건 왠만해서 전체 손익계산서에서 티도 안난다. 그나마 좀 티나게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게 어디일까?
그렇다. 인건비. 사업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고정비 같은 비용은 줄일래야 줄일수가 없는거고, 그렇다면 직원들에게 나가는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 그나마 차선책으로 쉬운 선택이 될 것 같다.
인력 구조조정
그러나 이게 과연 현명한 선택일까?
개인적으로 인력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근로자를 연봉으로 환산해서 계산하고 이를 기준으로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이전의 사례를 살펴보자. 카리스마 날리던 여자 CEO 칼리 피오라니가 HP 사령탑에 섰을때, 야심차게 컴팩과의 합병을 진행한다. 어렵게 이사진을 설득해서 합병을 성공시켰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컴팩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이 마이너스로 작용했다고 본다.
IT업계에서는 사람이 가장 큰 자산이다. 그런데, 인수합병 이후 구조조정을 한다고 하니 조직이 불안해졌고 가장 먼저 핵심인력들이 자리를 옮겨 버렸다. 아무리 경기 불황이고 사업이 안좋다 해도 실력있는 핵심인력들은 환영받는다.
다른 예라면, 최근에 리만 브라더스 아시아랑 유럽(이것도 인수했나?) 인수했던 노무라 증권. 사실 노무라는 리만 브라더스의 우수한 인력(?)들을 타겟으로 인수합병을 시도했는데 정작 인수하기로 하자 핵심인력들이 자리를 떠버린 것이다.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로 1년간 자리 지켜주는 대가로 노무라에서 성과금 잔치를 벌렸다는..
비용절감에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그에 따른 핵심인력 유출 위험도 부담해야 한다. 회사가 어려워질때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들이 누구일까? 보통 실력있는 핵심인력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자리를 옮길 수 있다. 결국 남는 사람들은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점에서 섣부른 인력 구조조정은 오히려 회사 경쟁력을 급격히 약화 시킬 수 있다.
또 하나 인력 구조조정의 문제점은 사람 = 연봉 이라는 공식이다. 이전 IMF 시절 우리나라 인력 구조조정에서 재밌는 현상이 나타났다. 연차가 높으면 연봉이 높은 만큼 일찍 정년 퇴직 시키면 그 연봉으로 신입사원 2~3명을 고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래서 나이든 사람들을 퇴출시키고 젊은 사람들도 대체하면 비용절감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지 않겠냐는..
과연 그럴까?
경륜, 경험..
아주 유명한 젊은 나무꾼과 나이 많은 나무꾼 이야기를 알테다. 하루 종일 같이 일을 했는데, 막상 일과를 마치고 성과를 비교하니 나이 많은 나무꾼이 더 많은 나무를 했다. 분명 젊은 나무꾼은 쉬지 않고 일을 했고 나이 많은 나무꾼은 쉬어가면서 일을 했는데, 오히려 더 많이 일을 했던 젊은 나무꾼이 결과물이 작았다. 이유는 나이 많은 나무꾼이 중간 중간 쉬면서 도끼날을 갈았던 탓이다. 무뎌지지 않은 도끼덕에 시간이 적었음에도 더 많은 나무를 할 수 있었다.
단순한 산술적 계산으로 인력 대체만 고려해서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한다면 장기간 회사가 쌓아온 오랜 경륜과 경험을 순식간에 날려버릴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지금 필요한 현금 확보를 위해 다시 되사올 수도 없는 시간을 파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력 구조조정, 신중해야..
그런 측면에서 인력 구조조정은 상당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회사란 결국 사람이다. 재무제표상에 나타나는 숫자가 전부가 아니다. 따라서 그 숫자를 토대로 계산된 전략은 심각한 후폭풍을 불러올 가능성이 다분하다.
일본의 많은 기업들이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정년을 폐지했다. 하지만, 유독 도요타 만큼은 정년 제도를 유지했다. 당시로 보면 구관습에 매인 결정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도요타의 결정이 빛을 발했다. 도요타가 세계 1위 자동차 기업이 된건 괜한게 아니라는 이야기.
제발, 기업들이 단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 임기응변책을 추진하기보다 지금은 어렵더라도 장기적인 시각에서 문제 해결을 시도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P.S. 무협지를 보면, 한 문파에 새로운 젊은 장문인이 등극하면서 오래 그 문파를 섬겨운 장로들이 푸대접을 받으며 쫓겨나는 장면이 나온곤 한다. 대부분 그런 경우, 나중에 큰 문제가 생겼을때 결국 다시 그들에게 돌아가 도움을 청하거나 해결책을 묻는 것도 이와 유사한 경우이지 않을까?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