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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 – ![]() 신장섭 지음/청림출판 |
과연, 기존 경제학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 뭐라고 할까?
금산분리나 대기업에 대한 논조로 봐서는 시장 경제를 선호하시는 듯 하나, 막상 IMF에 대한 입장이나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입장을 보자면 약간은 좌파적 성향이 강하신 것 같기도 하고.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어, ‘줏대 없는 사람’으로 평가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학문보다 실무를..
저자는 학부를 졸업하고 매일경제신문사에 취직했다. 원래 유학을 준비중이었으나 실물 경제를 직접 몸으로 느껴보고 싶다는 마음에 유학을 접고 취직을 택했단다. 그리고 직장을 다니던 중간에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싱가폴 국립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시다.
오락가락
이런 분에 대해, 감히 ‘오락가락’이라는 표현을 쓸 수 밖에 없는 이유. 앞서 이야기했다. 개별 주제에 대해서 각개 격파를 선택한 탓이다. 보통 시장 경제 쪽이면 ‘모든 답은 시장에 있다’로 밀어 붙여야 하는데, 저자는 그러지 않는다.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생각이 대표적이다. FTA, 주식 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에 대해서도 살짝 까칠하신 면이 있다.
그렇다고 시장을 싫어하는 입장이라고 보기에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가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나 한국 경제 발전에서 대기업이 가지는 의의에 대한 입장 표명에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게 된다.
중도 ..
필자의 결론은 ‘중도’. 책 서문에서 저자가 스스로 자신은 ‘실용주의자’, ‘제도주의 학파’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런 걸 감안하고 읽어서 그런지 저자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사실 저자는 매 주제에 대해 오락가락한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우리가 접하는 정보 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이 너무 한 쪽으로 치우쳐 있기에 마치 저자의 주장이 우리 생각에 대한 반론을 제시하는 사람으로 보고 우리가 편견, 선입관으로 먼저 판단해 버린 탓에 그렇게 보인 것이다. 즉, 오른쪽으로 쏠린 사람에게는 왼쪽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중간적 입장을 유도하고, 왼쪽으로 쏠린 사람에게는 오른쪽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중간으로 유도한다.
IMF,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
책을 보면서 인상적이면서도 통쾌하다고 느꼈던 부분이 IMF 체제, 그리고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에 대한 필자의 주장이었다.
사실 IMF는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주제 파악을 못하고 과도한 부채, 외채를 끌어다가 과잉 투자를 하는 바람에 발생했다고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금모으기 운동과 칼바람 부는 구조조정의 노력으로 IMF를 조기졸업했다고 이야기들을 한다.
하지만 사실 IMF체제로 간 것이 우리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우리 잘못이 없었다고 하지는 않는다.)
글이 좀 길어지겠지만 살짝 언급을 해보자면, IMF 이전에 우리나라에 막대한 양의 외국 자본이 유입되었었다. 보통 외국 자본 유입은 IMF 이후 뼈를 깍는 노력과 좋은 조건으로 많이 유치했다고 생각들을 하지만 실제로 IMF 이전에 상당한 양의 외국 자본이 국내에 유입되었었다.
그 돈으로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했었다.
이 부분에서, 과연 기업들의 당시 투자가 과잉투자였는지에 대해서는 정말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볼 노릇이다.
실례를 들어보자면, 당시 과잉투자의 대표주자는 단연코 한보철강이었다. 국내 수요를 넘어선 투자라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은데, 올해들어 현대제철이 사상 최대 순이익을 낸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한보철강이 현대쪽으로 인수되면서 지금의 현대제철이 되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이 이 당시의 ‘과잉’투자 덕분이었다.
현대제철이 중국의 성장과 함께 세계 철강재 수요 증가로 추가 투자를 결정하고 지금 당진에 고로를 건설중인데, 이거 준비하고 계획해서 실행하는데 이미 몇 년의 시간이 걸린다. 즉, 중국 수요가 폭발하는 걸 보면서 투자를 시작하면 이미 늦은 이야긴데, 그 이전에 선투자를 했었기 때문에 중국 특수를 누릴 수 있었다는 이야기.
조선업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후반 국내 조선업체들이 야드를 확장했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사상 유례없는 조선업 시장에 호황이 찾아오자 그간의 부진을 모두 씻고 오히려 다른 업체들을 유유히 따돌리며 세계 1위에 등극할 수 있는 뒷받침이 되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IMF가 발생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과잉투자보다 금융자본의 논리 탓이 컸다는 점이다. 투기 자본 탓이라고 할 수 도 있는데, 금융자본은 위험을 싫어한다. 단기적으로 발생하는 수익은 즐겨하지만 조금이라도 손실 기미, 위험이 보이면 당장 탈출한다. 그래서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금융자본이 일순간에 말라버린 것이다.
아니면 최근을 보자. 요즘 엔화가 난리도 아니다. 그래서 엔화로 대출받은 기업들에 대해서 은행들이 대출금 회수에 나섰다고 한다. 아니면 KIKO로 위험에 빠진 흑자 기업들에 대해, 회생에 대해 고려하기보다 냉정하게 위험 회피를 위해 대출금 회수에 나선 은행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런 환경에서, 기업들은 무슨 자금으로 투자를 하는가?
사실 이번 경제 위기에 대해서 좀 불안한게 사실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너무 투자를 안했다. 물론 대기업들은 했다. POSCO는 베트남, 인도는 물론 국내에서도 공장, 설비 늘렸다. 석유화학 업체들? SK에너지 고도화 설비 투자했다. S-Oil도 한다. 삼성전자도 대규모 투자하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중소기업들이다. 중소기업들에게는 그런 막대한 투자가 가능한 유보자금이 없다. 외부에서 충당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금융 자본들은 IMF 이후 철저히 소비 대출만 해왔다. 부동산 대출해주고, 아니면 카드 발행해서 개인들에게 신용대출을 해주든. 반면 중소기업들의 자금 조달은 너무 어렵다. 이 부분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며 금산분리 폐지를 통해 산업자본을 키우는게 어떤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무작정 폐지하자는 건 아니고, 우려하는 바들에 대한 규제를 고려해서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워렌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합쳐진 가운데, 실력있고 정직한 사람이 운영을 하게 되면 얼마나 큰 효과가 나타나는지에 대한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책을 덮으면서 ‘역지사지’를 떠올렸다. 경제학자이면서도 꼭 경영학자 같은 저자. 자기 주장을 기준으로 다른 입장을 판단하고 결론짓기 보다 한걸음 물러서서 입장을 바꿔가며 생각해보고 중간적 입장에서 가장 실용적인 해답을 찾으려고 고민하는 모습, 아니 그럴 수 있는 실력과 지식이 부러웠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 책,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대신 선입견이나 편견은 버리고.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책을 집어던지지 말고, 잠시 내 생각, 내 주장을 내려놓고 저자의 주장과 생각에 따라 글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다시 자기 생각으로 돌아와서 가장 좋을 것 같은 답을 찾기 바란다.
지금 한국 경제는 어려운 위기에 봉착했다. 요즘 경제학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는 중인데, 그 중 금융자본의 과도한 소비 대출로 인한 부채 문제와 기업들의 투자 실종을 두고 걱정이다. 이런 때 일수록, 서로 신경이 날카로와져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기 쉽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우리가 갈길이 너무 멀다.
그러기에 이 책 저자의 주장처럼 이제까지 우파, 좌파로 아니면 친 시장인지 친 정부인지로 양분했던 경제의 패러다임을 실용적이고 창조적인 결론을 위해 과감히 깨부수어 줬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