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속의 우산 ..

By | 2008년 1월 15일

2005년에 쓴 칼럼인가보다. 한참 태풍 ‘나비’가 난리치던 시절, 학교에서 비내리는 창문을 내다보다 쓴 칼럼인듯 싶다. 다시 읽어보다 괜찮아서, 새 블로그에 옮겨 본다.


================================================


지금 한반도 옆으로 태풍 ‘나비’가 지나가고 있다. 일본은 비와 바람으로 초토화된 것 같고 한국도 부산과 동해안이 집중적으로 공격당하고 있다.


우리 학교가 바닷가 가까이 위치하고 있기에 그 태풍의 위력을 새삼 몸으로 느끼고 있다. 바람이 어찌나 쎄게 부는지 걸어다니기가 힘들다. 비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게 아니라 옆으로 날라온다.


이런 와중에 재미있는 사실을 한가지 발견했다.
역시 옛말은 틀리지 않았다. ‘강한 것은 부러지기 마련….’ 이라는 말 말이다.


날씨가 이 모양이라도 90% 가까운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기에 수업들은 대부분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그 덕에 강풍과 폭우를 뚫고 애들이 수업을 듣기 위해 이동을 했었는데, 나름대로 비바람을 피해보겠다고 비옷을 입고 나서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과감하게 우산을 들고 나선이들도 있었다.


바닷가 바람을 맞아 본사람은 알겠지만, 우산을 들고 서 있는 것 조차도 상당히 힘들다. 거기다 학교의 건물들과 작은 구릉 덕분에 중간 중간에 바람의 방향이 수시로 바뀌면서 우산을 쓰고 가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다.


애들마다 각양의 우산이 총 출동했다. 가장 약해보이는 3 단 우산부터 살대가 무지 많은 튼튼해 보이는 우산, 그리고 비치 파라솔만한 큰 우산들..


그런데, 강한 바람을 맞다 보니 여기저기서 애들의 우산이 부서져 나갔다. 제일 심하게 타격을 입은 녀석은 상대적으로 면적이 넓은 비치 파라솔 우산. 한번 잘못 뒤집히면 살대가 그냥 부러져버린다.


그 뒤를 이어 살대 많은 우산들이 휘어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워낙 강해서 힘으로 뚫고 나가려고 우산을 밀다보니 바람을 집중적으로 맞았던 부분이 휘어버린 우산이 많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3 단 우산. 싼만큼 제일 약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잘 부러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런 강한 바람속에서 정말 유용했다. 바람이 불어올때는 마치 내 옷처럼 몸에 착 달라 붙기도 하고, 작고 가볍다보니 바람 방향에 따라 우산의 방향을 바꾸기도 쉬웠다. 바람 정면에서는 바람과 맞서기 보다 힘에 눌리면서 적당히 좁아져 별 무리 없이 걸어갈 수 있었다.


그랬다. 외유내강. 안의 기둥은 튼튼했지만, 살대들은 적당히 부드러웠기에 3 단 우산이 오히려 폭우속에서 더 유용했다. (물론 들고 나간사람이 별 신경안쓰고 들고 다녔으면 제일 먼저 망가질 수도 있다.) 강한 것, 곧은 것이 언제나 좋은 것 만은 아니었다. 맑은 날 또는 적당한 상황에서는 강한 것이 좋아보이고 곧은 것이 좋아보인다. 하지만 상황이 험해지고 어려워지고 힘들어 질 수록.. 갈대처럼 약한 것이 그 강함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세상 속에서 남들에게 강한 사람, 뭔가 대단한 사람,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으로 비춰지기를 바라는게 우리들의 마음이겠지만, 정작 어려운 순간, 힘든 순간이 닥쳐올때 정말 강함을 나타내는 사람은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배우자, 3 단 우산의 부드러움을..

답글 남기기